사계절이 뚜렷한 나라 대한민국.
교복 입던 시절 이렇게 배웠던 것 같다.
사계절이 뭔 대수야? 때 되면 꽃 피고 잎 무성해졌다 낙엽 지고 눈 오는 거지 뭐. 사계절이 대수롭지 않았다.
아니 너무 자연스러워서 귀한 줄 몰랐다고 하는 게 더 맞다. 사계는 귀하다.
길고도 짧은 베트남생활동안 나는 울긋 불긋한 가을을, 눈이 소복한 겨울을,
봄이면 지천에 널린 개나리 진달래 벚꽃을 못보고 살았다.
뭐가 제일 그리워? 하면 벚꽃팝콘과 소복이 쌓인 흰 눈.
코로나로 한국에 잠깐 있는 여름부터 초봄까지 눈은 못 봤지만 단풍은 실컷 봤다.
그리고 2022년, 포르투갈에 오면서 또 못보고 지나간 벚꽃, 벚꽃 타령을 그렇게 해대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는 짝꿍.
그리고 4월, 볕이 좀 덜들어 뒤늦게 만개한 아몬드나무를 보고 나는 다짐했다.
내년엔 벚꽃은 못봐도 아몬드꽃은 실컷 봐야지.
그리고 봤다. 히히.
구글 아트&컬쳐에 나오는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이다.
그냥 고흐의 아몬드 나무만 검색해도 쉽게 나오는데 직접 아몬드 꽃을 보기 전엔 나는 왜 이 그림이 특별한 줄 몰랐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미술감상에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근데,
직접 흰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몬드나무를 보니 알 것 같았다.
진- 짜 예뻤구나. 그래서 그렸구나.
볕이 좋던 날은 바람이 너무 차서, 그러다 날씨가 안좋아져서,
홀로 있는 나무 말고 아몬드나무가 우르르 있는 그런 농장을 찾느라,
제일 꽃이 많이 핀 아몬드나무는 다 개인의 정원 안에 있는 나무여서,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차 타고 지나다니다 도로변에 핀 꽃들이 더 많아서...
그래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다.
마침 집 앞, 내가 요즘 열심히 달리기를 해보는 그 크로스의 닉네임이 아몬드크로스였다.
그리고 마침내 꽃이 만개했다. 사실 한 주 전에 만개했는데 그 사이에 바쁘고 아프고 피곤하고 비가 왔었다.
올해도 사진을 못 찍고 넘어가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뛰다 말고 나무 근처로 가서 사진 찍었다.
매화꽃도 벚꽃도 아닌 아몬드꽃이 하아얗게 풍성한데 정말 예뻤다.
비 오는 날 차를 멈춰서 잠시 구경한 어느 집 아몬드나무에는 빗물에 젖은 꽃잎이 인도 위에 소복했다.
그것만 봐도 벌써 봄 같고, 벚꽃 같고, 바야흐로 춘하추동의 '춘'이 왔구나 싶었다.
계절을 느끼며 산다는 건 참 사소해 보이지만 소중하다.
나는 요즘 이 아몬드크로스를 뛰며 한껏 초록초록해진 자연을 보며
'아 나는 정말, 초록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
꼭 정원 있는 집에 살아야지. 꼭 식물을 가꾸고 살아야지.
5월까지는 꽃도 많고 초록도 많고 참 좋은
봄 알가르브, Bom Algarve.
2023.03.16 - [포르투갈] - 포르투갈 이야기 '아몬드 꽃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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