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추를 사서 절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짐을 다 옮기자마자 마트부터 달려가 배추를 잔뜩 샀다.
배추가격이 좀 싸다고 생각했는데 가격은 그대로인데 무게가 덜 나가는 거였다.
마늘도 잔뜩 사고 소금도 샀는데 사던 가는소금을 살 것을 괜히 좋은 거 쓴다고 'rustic' 붙은 굵은소금을 샀더니
배추가 평소보다 짜게 절여졌다. 이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배추가 절여진 이상 양념 묻혀야 끝난다.
비싸게 준 배추 버릴 거야 어쩔 거야.
어찌어찌 내식대로 끝난 김치를 보니 뿌듯해서 엄마한테 사진을 보냈다.
2. 사서 먹으면 될 것을 왜 사서 고생을 하니, 너 힘들게.
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 나도 나는 가끔 먹는 김치 사서 먹으면 얼마나 좋게..
근데 파는 곳이 많지 않아서 사서 먹는 게 너무 어렵고,
어떤 김치는 배추보다 김치 소가 더 많아서 음식에 쓰기에는 너무 어렵더라고.
한국에 살았으면, 아직 베트남에 살고 있었으면 아직도 김치는 가끔 사서 먹는 음식이었을 거다.
내가 직접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후로부터 김치는 나보다도 남편에게 더 중요한 음식이 됐다.
매끼마다 김치를 챙겨 먹는 건 내가 아닌 남편이다.
바깥음식을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할 때, 많이 피곤하고 몸이 으슬으슬 아프려 할 때,
짧게든 길게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우리는 꼭 약속이라도 한 듯이 김치찌개를 먹었다.
3. 나도 김치를 먹긴 한다. 김치찌개할 때, 김치전 할 때, 김치볶음밥 할 때만 말이다.
그래서 창피하지만 나는 갓 담근 내 김치 맛을 모른다.
그냥 색깔, 냄새로 아 익었겠구나 짐작만 할 뿐, 이번엔 더 짠지, 더 매운지, 더 단지 알 도리가 없다.
아니 나는 요리한 김치만 먹으니까..... 한국인 아니래도 할 말 없지 뭐.
그런 까닭에 내 김치는 김칫소가 없다.
어차피 나한테 김치는 찌개 끓일 때, 솥밥 할 때, 전 부칠 때, 만두 빚을 때 필요한 음식이라서.
언젠가 당근이랑 쪽파랑 무를 채 썰어서 소를 넣고 비벼봐야지 했는데
양념 만들 때쯤 되면 이미 김치에 투자할 체력이 바닥이기 때문에 강판에 갈 여력이 없다.
도깨비방망이(블렌더)가 고장 나지 않기를 바라며 각종 양념을 갈아버린다.
지난번 김치가 하나도 안 맵다고 해서 이번엔 카옌페퍼를 한 숟갈 넣었다.
덜 익은 풋김치를 맛보라고 남편에게 줬더니 화- 하고 맵다고 하더라.
나는 저 김치가 익어서 찌개로 탄생하기 전까지 매운지 안 매운지 모르겠지.... ㅋ
4. 벌써 8번이나 김치를 담갔다.
김치 양, 먹는 속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한번 담그면 한 달이면 다 동이 나는 것 같다.
김치가 익어서 시큼한 냄새가 나면 그때 가속이 붙는다. 내가 요리를 자주 해내니까.
그래서 세어보니 작년 12월을 시작으로 거의 매달 한 번씩 담갔으니까 8번이나 김치를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계량도 안 하고 양념을 슥슥 했다.
아... 갑자기 또 맛이 걱정되지만 어쩌겠어, 이미 내 손 떠난 김치인걸.
아무튼,
이사완료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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