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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3년 돌아보기.

by Mia_Algarvian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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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참 다이나믹했다.

정말 이렇게 다이나믹하기도 어려운데 이 모든 다이나믹이 다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혼인신고

1월 10일 나는 포르투갈 유부녀, 2월 20일엔 한국 유부녀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소개할 때 애인이라는 뜻의 "namorada/namorado"에서 

부인과 남편인 "esposa/marido"로 바꼈다. 

이 호칭이 뭐라고 올해 우리는 정말 결속력 좋은 팀이었다. 

 

취직

단기 이사를 몇 번 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가게 주인에게 발탁되어 여름 성수기동안 가게에서 일을 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어설픈 외국어로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영어 시험볼 때 나는 독해보다 듣기를 곧 잘했었는데 일할 때는 그 듣기마저도 없는 실력이 되어버린다.

특히 영국 사투리....  그치만 꽤나 일을 잘 해냈고, 잘 해냈다고 인정도 받았고, 월급도 받았다. 

어찌어찌해도 돈을 벌었단 사실에 자존감이 쭉 올라간 한 해가 되었다.

 

사회보장번호, 거주증, 거주등록, 의료번호, 계좌번호 등 모든 숫자 획득

정말 안될것만 같던 일들이 갑자기 술술 잘 풀렸다.

5월엔 사회보장번호가 뚝딱 만들어졌고, 6월엔 산타렝 sef에 가서 거주증을 신청했다.

거주증이 나오니 은행 계좌 트는 것도 뚝딱이었다. 

동네 주민센터격인 junta de freguesia에 거주등록을 하는 절차는 엄청 까다로웠지만, 

10월에 마무리했다. 그래서 거주지 관할 centro de saude에서 의료번호 발급도 완료했다.

포르투갈은 이런 식이다. 안될 것 같다가 갑자기 다 된다.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듯 어렵지만 하나 통과하고 나면 그다음 구슬 꿰기는 쉬워지는 느낌이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주제랑도 연결된다. 

 

PLA

포르투갈어 수업을 들었다. 겨우 A1, A2를 마쳤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수업 내용에서 얻어간 것도 일부 있지만 숙제를 통해 더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지문을 읽고 이해하고, 때로는 작문도 해야하고 발표도 해야 하고.

발음이나 문법 등 뭘 딱히 배웠다고 하긴 그렇고, 그냥 꾸준히

주 3회 하루 4시간을 4달 동안 꾸준히 공부할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 좋았다. 

수업 이후로는 알게 모르게 포어를 좀 더 잘 알아듣는 듯도 하고, 

나도 포어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게 됐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훠어얼씬 더 많다. 

일단 상대가 천천히 말해줘야 하고, 쉬운 단어로, 일상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나는 알아들을 수 있다.

그게 어디야?!

 

세빌야, 혼다 여행

11월, 남편 생일을 맞아 스페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웃나라 스페인은 포르투갈이랑 비슷한 듯 달랐다. 

여름 내내 서서 일했던 나는 잘 걸어 다녔고, 여름 내내 앉아서 일했던 남편은 하루 만에 발가락에 물집이 잔뜩 잡혔다.

어떤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고 어떤 음식은 돈 내고 먹는 고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자차로 편하게 이동하는 재밌는 시간이었다.

은근 식도락 여행이었어서 포르투갈로 넘어오기 전 '아야몬테(ayamonte)'에 멈춰 

스페인 맥주 크루즈캄포(cruzcampo)를 잔뜩 샀다. 

 

응애, 애기가 찾아왔다.

정말 뜻하지 않게 아기가 찾아왔다.

1월~2월에 한국행 비행기를 벌써 6개월 전에 사두고, 

그 사이에 휴양지에서 쉬려고 베트남행 비행기표도 끊어뒀다. 

그래, 혼인신고 후 10월쯤 까지는 우리 삶이 너무 잘 굴러가는 바퀴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기가 찾아오면 참 좋겠다 그런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다 매달 오는 손님에 실망도 했었다.

그러다 이제 휴가가 다가오니까 정말 신나게 놀 작정이었는데 아기가 뿅 하고 왔다.

그래서 2023년 은 8주 차 임산부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좋은데 불안하고 신나는데 불편하고 갑자기 막 모든 게 겁나는 그런 기분이다.

세상에, 우리가 부모가 되다니?! 

 

 

2023년 끝. 

우리가 사랑하는 Av. Marginal 의 석양